About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길을
선택한 50대의 기록
의료기기 업계에서 25년을 보낸 뒤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자신감 하나만 들고서.
결과는 —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고, 예상보다 훨씬 많이 배웠습니다.
100세 시대. 나는 지금 딱 절반 지점에 서 있습니다.
사회생활의 첫 출발은 의료기기 회사였습니다. 보조기와 물리치료 장비를 들고 병원을 누볐고, 그 길이 25년이 됐습니다. 누군가는 “한 우물을 팠다”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한 우물 안에서 수없이 많은 세계를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의사들, 재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환자들. 그들과 나눈 대화와 현장의 경험은 어떤 교과서도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줬습니다. 제품 개발의 언어, 현장 통증의 실체, 그리고 규제와 품질의 무게감까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두려웠습니다. 내가 고인물이 되고 있구나.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고, 편안함이 성장의 적이 되던 그 순간,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15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오면서,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을 선언한 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직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품질책임자 자리가 공석이 될 것 같으니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죠. 일주일의 40% 정도의 시간을 용역으로 제공하며 알바비를 받는 이중적인 삶 — 나가면서도 완전히 나오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그것이 새 출발의 런웨이가 되어줬습니다.
퇴사와 함께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30년 현장 경험이 있으니 컨설팅도 되고, 제품 개발도 되고, 창업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곧 깨달았습니다. 영업의 경험과 사업의 경험은 전혀 다른 언어였습니다.
시도는 많이 했지만 결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국책과제로 예비창업과 신사업창업사관학교, 도전K스타트업 등등에 도전했지만 낙방했고, 교수와 함께 추진하던 병원 판매 프로젝트는 서로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Drop 됐습니다. 특허 1건을 등록한 것이 그 시기의 유일한 가시적 결과물이었습니다. 2년의 임대료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상주 오피스로 주소만 남기고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퇴사 3년차.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국책과제에 선정되어 창업혁신공간에 책상 한 자리를 얻게 됐습니다. 물리적 공간이 생기자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시야, 새로운 연결.
15년을 함께했던 에버노트와도 이별했습니다. 메모광으로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옵시디언으로 이사한 뒤 노트 간의 빠른 연결과 아이디어의 흐름에 만족하게 됐습니다. AI 활용도 본격화됐습니다. 도구가 바뀌자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년차부터 조금씩 준비해온 손목보호대와 무릎보호대도 이제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업체마다 다른 납기, 소규모 생산의 제약 — 크고 작은 고충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처음으로 ‘결과물’이 눈앞에 보이는 단계에 왔습니다.
실패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3년이 지금의 저를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 — 사업의 언어, 규제의 원리, 사회 초년생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읽는 법 — 을 실패를 통해 몸으로 익혔습니다.
AI를 통해 에이전트 개념도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모든 걸 하려던 방식에서 벗어나, 도구와 시스템이 일하게 하는 구조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실천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지속시키는 에너지와 기획력입니다. 움직이게 하는 이유가 없으면 어떤 도구도, 어떤 계획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두 번째 인생의 진짜 시작점이었습니다.
손목보호대 시제품이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처음으로 내 손으로 기획하고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입니다. 자기 증명의 첫 페이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삐삐를 쓰던 시절부터 AI와 대화하는 오늘까지. 저는 문명의 전환기를 정면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변화들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지금 이 시대의 전환이 역대급이라는 것을 체감합니다. 디지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삶의 기반입니다.
100세 시대의 절반 지점. 나머지 50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화두입니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고, 디지털과의 동기화 없이는 뒤처지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렇다고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를 겪어온 경험 자체가 유연성의 자산이 되니까요.
이 블로그는 그 고민의 기록입니다. 정답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50대가 직접 부딪히며 발견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담는 공간입니다. 5년 로드맵을 그리고, 하나씩 실험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