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에 내가 겪는 어색함과 시행착오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집안에서 내가 처음 밟는 땅이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숨통이 트였다.
나의 현재 상태는 집안의 누적된 결과다

솔직히 말하면, 50대가 될 때까지 이 생각을 못 했다. 퇴사를 하고, 1인 창업을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많이 고생을 하셨다. 윗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하나도 없이 무일푼으로 자수성가를 하셨다. 오로지 성실함과 끈기 하나로 일궈내셨다. 그 결과 세 형제 모두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각자 아들 하나 딸 하나씩을 낳고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아버지가 쌓아올릴 수 있는 경험의 천장이 거기 있었다. 아버지는 힘이 빠지셨고, 해보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조언도 한계가 있었다.
처음엔 그게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안다.
자수성가라는 건,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 안에서 이뤄진다. 한 사람이 한 세대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그게 팩트다.
경험이 누적된 집안은 처음부터 다르다

의료기기 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영업도 해봤고, 품질 책임자도 했다. 하지만 창업은 달랐다.
세대를 바꾸는 마인드셋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주는 집안이 있다. 경영, 투자, 협상, 네트워킹. 말로 배우는 게 아니라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흡수시키는 집안. 평상시의 모든 행동과 대화에서 집안의 위치와 노하우가 펼쳐진다.
거기서 자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당연히 격차가 생긴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대리 경험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근데 부모 탓, 조상 탓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퇴사 후에야 제대로 깨달았다. 그냥 시간 낭비다. 바로 뛰어 들어서 최우선 순위를 설정하면서 부딪히고 해결하고 경험해야 한다.
집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 그 어색함의 정체

50대 창업 첫 경험을 해보면 안다. 정말 사방에서 낯선 것들이 튀어나온다.
세무사를 처음 만나는 것. 계약서에 내 이름으로 도장을 찍는 것. 사업자등록을 처음 내는 것. 투자자 앞에서 내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것.
이런 것들이 어떤 집안에서는 어릴 때부터 옆에서 보고 자란 풍경이다. 나한테는 모두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어색했고, 어색하니까 실수했고, 실수하면서 뼈아프게 배웠다.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그 어색함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부모 없이 처음 경험하는 것들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도 나자빠져 있을 수 없는 이유

내가 멈추면, 내 자식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다.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익힌 것들이 쌓이면, 그게 다음 세대의 자본이 된다. 지식이든, 네트워크든, 돈이든, 마인드셋이든. 그 정수가 세대가 거듭되면서 쌓인다.
내가 눈치를 보면서 겪었던 뼈아픈 시행착오. 내 자식 세대부터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그게 세대 격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지금 집안에서 처음으로 이 길을 닦고 있다. 불완전하고, 느리고, 때로는 헤매지만. 그래도 첫 번째 사람이 걷지 않으면 길이 생기지 않는다.
처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법

모든 시도와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이라는 두려움보다, 집안에서 처음 깨어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쉽지 않다. 지금도 낯선 상황 앞에서 움츠러드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되뇌인다. “아버지가 쌓아 올린 토대 위에 내가 더 많이 쌓아 올리겠다”
그러니까 내가 부족한 게 아니다. 그냥 처음인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지식을 흡수하면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배우면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쌓아올린 토대위에, 지금 내가 만들어가고 차곡차곡 쌓아가면 된다.
4852 프로젝트, 그 자체가 길을 닦는 과정이다

48세부터 52세까지. 나는 지금 이 5년 안에 내 집안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해보고 있다.
1인 창업, 블로그 운영, 제품 개발과 런칭. 온라인 마케팅. 어색하고 서툴지만, 전부 처음이라서 그렇다.
이 경험들이 쌓이면 된다. 나와 내 식구가 살 수 있는 길이 되고, 내 자식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힘빠지고 기 빨리고 어색해 할 시간이 없다. 처음이니까 당연하다. 그게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목표이다.
“삼대에 걸쳐 공을 쌓는다.”